경주의 숨결
불국사, 양남 주상절리, 그리고 문무대왕릉
경주, 천년 신라의 고도(古都).
이름만 들어도 아련하고 깊은 역사의 향이 느껴지는 이 도시는
갈 때마다 새로운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이번 경주 여행 둘째 날은
시간을 초월한 건축미의 정수 불국사,
자연의 신비로움이 웅장하게 펼쳐지는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그리고 신라인의 염원이 담긴 문무대왕릉을 중심으로 여정을 꾸렸는데
고즈넉한 사찰의 정취부터 동해의 거친 파도 소리까지,
역동적이면서도 평화로웠던 경주 여행 이야기입니다
1. 신라 예술의 극치, 불국사 (佛國寺): 과거와 현재를 잇는 평온함

528년,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발원으로 불국사 창건
751년, 당시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 두 번째 중창
1593년, 왜군에 의해 파괴된 불국사는 1604년 경부터 복구와 중건
1966년부터 부분적인 보수를 거처
1973년 마침내 현재의 불국사 모습을 갖추었으며
2012년부터 시작된 석가탑 해체 복원 작업이 2015년 마무리








토함산 자락에 안겨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불국사는
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불교 사찰입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이 서린 곳이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은 불국사는 그때와는 또 다른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석가탑과 다보탑,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불국사의 하이라이트는 국보인 석가탑(삼층석탑)과 다보탑입니다.
이 두 탑은 대웅전 앞마당에 나란히 서서 마치 신라 건축의 대화처럼 느껴집니다.
'단순함 속의 완벽함'을 보여주는 석가탑과,
'복잡함 속의 조화로움'을 자랑하는 다보탑은 불국사가 지향했던
이상적인 불국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듯합니다.


석가탑이 무영탑(無影塔) 설화로 대표되는 서민적이고
현실적인 부처의 세계를 담고 있다면,
다보탑은 화려하고 장엄한 이상 세계를 표현합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돌에서 느껴지는 묵직함과, 섬세하게 조각된 난간과
계단에서는 신라 장인들의 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음을 생각하니,
탑 하나하나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신라인들의 염원과 집념이 뭉쳐진
결정체처럼 느껴졌습니다.
자하문과 청운교/백운교의 웅장함
불국사의 입구 격인 자하문(紫霞門)으로 오르는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입니다.
다리 아래 세상을 지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돌계단은,
당시의 뛰어난 건축 기술과 종교적 의미가 결합된 것입니다.
33계단은 불교에서 말하는 33천(三十三天)을 상징하며,
속세에서 불국토로 건너가는 통로의 역할을 합니다.
자하문 아래에서 바라본 불국사의 풍경은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고즈넉한 사찰 곳곳에서 만나는 평화
대웅전과 극락전을 감싸는 회랑을 천천히 걸었는데
화려한 단청 아래에서 고요히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는
도시의 소음을 잊게 해주는 명상과 같았습니다.
불국사 전체를 둘러보는 동안, 저는 '시간의 힘'을 생각했습니다.
1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자리에서 굳건히 서 있는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 역사의 증인이며, 그 앞에서 잠시나마 겸손해지고
평화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불국사는 단순한 문화재를 넘어,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든 살아있는 역사였습니다.

토함산 터널을 지나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으로 출발
2. 자연이 빚은 기하학적 걸작,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역사의 깊은 향을 맡았다면, 이제 경주의 동해안으로 시선을 돌려
자연의 웅장한 예술 작품을 만날 차례입니다.
경주 동해안에 위치한 양남 주상절리는
제주의 주상절리와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주상절리를 따라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인 파도소리길이 조성되어 있어,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며 걸을 수 있습니다.

부채꼴 주상절리의 경이로움
양남 주상절리의 가장 큰 특징이자 압도적인 광경은
바로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입니다.
마치 신의 손길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린 듯,
규칙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부챗살 모양의 돌기둥들이
바닷속에서 솟아나 육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1000도 이상의 마그마가
급속도로 냉각되며 수축하여 생성되는 주상절리는
주로 기둥 모양(육각형, 오각형)이 일반적인데,
이곳 양남에서는 누워 있거나 부채꼴, 꽃잎 모양 등
매우 다양하고 기이한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다채로운 형태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하여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특히 파도가 주상절리 기둥 사이로 부딪히며 부서지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하얀 포말과 검은 현무암 기둥의 대비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수백만 년 동안 이 자리에서 파도와 바람을 견뎌온
자연의 끈기와 힘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파도소리길을 따라 걷는 명상
파도소리길은 읍천항부터 하서항까지
약 1.7km에 걸쳐 조성된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입니다.
길을 걷는 내내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 바다와
신비로운 주상절리가 펼쳐져 눈이 쉴 틈이 없었습니다.
길 이름처럼, 걸을 때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교향곡 같았습니다.
주상절리의 신비를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데크가 설치되어 있으며,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벤치와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주상절리 군락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에 올라가 보니, 광활한 동해와
그 위에 펼쳐진 지질학적 예술 작품의 웅장함이 더욱 와닿았습니다.
파도소리길을 걷는 것은 단순한 산책 이상의 경험이었고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를 보며,
삶의 순환과 무상함을 되새기고 마음속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해변 마을인 읍천항과 하서항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벽화와 카페들이 있어,
걷기의 즐거움에 더해 소소한 힐링을 더해줍니다.

월성전원단지와 봉길터널을 지나 문무대왕릉으로 향합니다
3. 용이 된 왕의 염원, 문무대왕릉 (大王巖)
경주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수중릉(水中陵),
신라 제30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문무대왕이 잠든 문무대왕릉입니다.
육지가 아닌 동해 바닷속에 위치한 이 수중릉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무덤입니다.

'대왕암(大王巖)'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문무왕이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에 따라 장례를 치른 곳입니다.
수면 위에 떠오른 신라인의 염원
문무대왕릉은 육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바다에 위치한
거대한 자연 바위 섬입니다.
바위섬 가운데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가 있어, 마치 네모난 연못처럼 보입니다.
학자들은 이 바위 아래에 문무왕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잔잔한 파도 위로 굳건하게 서 있는 대왕암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문무왕의 애민정신과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살아생전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고 결심한 비장함과 웅장함이
바위섬 주변을 감돌고 있었습니다.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바다에 대한 경외심이
어떻게 현실로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문무대왕릉을 둘러본 후에는 근처의 이견대(利見臺)로 갔습니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유언을 기려 용이 된 문무왕을 만나
국사를 논했다는 전설이 깃든 곳입니다.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다는 곳으로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에서 따온 이름처럼,


이곳에 올라서면 문무대왕릉이 한눈에 들어와
왕과 용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번 경주 여행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거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여정이었습니다.
불국사에서 만난 고요한 깨달음,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에서 느낀 자연의 역동적인 생명력,
그리고 문무대왕릉에서 마주한 신라인의 웅장한 염원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경주는 단순히 옛 유적을 보존하는 도시가 아니라,
천년의 시간이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공간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과 역사를 되돌아보고 싶다면 경주로 떠나보세요.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시간과 파도가 빚어낸 새로운 이야기가 새겨질 것입니다.
곧 경주에서 개최되는
제33회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APEC 2025 Korea)의
성공 개최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산소 카페 경북 청송군으로 출발합니다